(사)무주관광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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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지

무주 한풍루

  • 관광명소무주 한풍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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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읍 제2경인 한풍루는 2층 누각으로 1층은 정면 3간 측면 4간이며, 2층은 정면 3간 측면 2간으로 연건평 154,9㎡, 이익공(二翼工) 팔작(八作)지붕이다.
본래 무주의 관아 앞 천변(현 무주우체국 자리)에 위치했는데, 언제 누구에 의해 처음 건립되었는지에 대한 기록이 없어 확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세조 11년(1465) 전라관찰사를 역임한 성임(成任)이 한풍루를 다녀간 뒤 남긴 시(詩)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이전에 건립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중종 25년(1530)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한풍루(寒風樓) 재객관전(在客館前)’이라 기록되어 있다.
한풍루에는 수많은 명사와 묵객들이 찾아와 아름다운 경관을 글로 남기며 풍류를 즐겼는데, 조선초기의 학자로 시문에 능했던 성임, 중종 때 영의정을 지낸 유순(柳洵), 선조 때 시문에 뛰어난 백호(白湖) 임제(林悌), 인조 때 명신 청구(淸滾) 임담, 전라관찰사 목성선(睦性善) 등의 글이 한풍루지에 실려 있다. 특히 임제는 한풍루를 호남지방의 삼한(三寒 :남원 광한루, 전주 한벽루, 무주 한풍루) 중 으뜸으로 꼽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한풍루는 임진왜란 중 불에 타버렸다. 그 후 왜란이 종결되던 선조 32년(1599) 백호 임제의 동생인 현감 임환(林潁)에 의해 복원이 착수되었는데, 그는 복원을 마무리하기도 전에 전임되어 후임 남복시(南復始)에 의해 복원되었다. 그 후 인조 24년(1646) 보수, 숙종 4년(1678) 단청, 영조 5년(1729)과 정조 7년(1783) 중수되었다.
그러나 1910년 경술국치(庚戌國恥) 후 불교포교당으로, 무주보통학교 공작실 등으로 사용되었는데, 뒤에 안국사 이철허(李澈虛) 주지가 불하받아 관리하게 되었다. 그런데 유지가 곤란해지자 일본인 나까야마(中山)에게 저당잡히게 되었다. 그 뒤 일본인 우수이이또(簿井 誠)가 매입하게 되는데, 그는 1936년 충북 영동군 양산 사람 이명주(李命周)에게 다시 팔았다. 이에 따라 한풍루는 뜯기게 되었고, 목재는 영동군 양산면 가곡리 금강변으로 옮겨졌으며, 한풍루 대신 금호루(錦湖樓)라는 현액이 걸리게 되었다.
그 후 1960년대 들어 무주면 읍내리에 거주하던 한기문(韓基文) 옹의 끈질긴 복구운동에 따라 ‘한풍루복구추진위원회’(위원장 金南實)가 결성되었고, 위원회는 1971년 3월 24일 목재를 100만원에 매입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11월 15일 본래위치했던 곳의 맞은편인 당산리 남산자락 언덕에 복원하였다.

• 서울 : 경부고속도로→대전비룡분기점→무주/통영고속도로→무주IC(우회전)→싸리재터널→무주읍교차로(우측진입 후 좌회전)→한풍루로→한풍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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