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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참여] 적상산 사고지 방문기

  • 작성자박범찬
  • 작성일2024.05.06

지난 5월 3일에 적상산 사고지에 와본 이야기를 써보려고 합니다.

적상산에 종종 드라이브를 하러 왔었는데, 올 때마다 도로가 막혀있어서 사고지까지 와본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평탄한 도로에서 벗어나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오다보면 머루와인동굴을 볼 수 있습니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다보면 알록달록한 조명이 길을 예쁘게 비추고 있고, 옛날 무주의 사진들도 볼 수 있습니다.
안쪽 넓은 공간에 들어서보니 와인을 맛볼 수 있는 장소가 있었고, 더 안쪽에는 족욕 체험장도 있었습니다.
술과 친하지 않은 저는 금방 나와서 다시 사고지를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길을 따라가다보면 왜적이 이런 곳은 정말 못 찾겠다 싶은 장소에 적상산 사고지가 있습니다.
사고지 바로 옆 건물에서 해설사님께서 나와주셔서 1대1로 문화재 해설을 1시간 넘게 해주셔서 정말 좋은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설명해주신 것들 중 기억에 남는 것을 일부 적어보겠습니다.

적상산 사고는 원래 현재의 호수 위치에 있었다가, 초석만 옮겨와서 현대에 다시 지었습니다.
사고는 크게 선원각과 실록각 두 건물로 구성되어 있는데, 두 건물을 비롯해 고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채 복원되었습니다.
솟을삼문 입구 대신 평삼문으로 지어졌으며, 건물의 형태 또한 기존과 달라졌습니다.
선원각에서는 왕실의 족보를 보관했고, 실록각에서는 실록을 보관했는데, 두 건물이 모두 있어야만 '사고'의 조건이 갖추어집니다.
왕실의 족보는 남자는 9촌, 여자는 6촌까지 기록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될 만큼 복합적이고 객관적인 기록물을 대표합니다.
태종 때 태조와 정종 실록이 처음 쓰이기 시작했고, 일제의 영향과 대한제국의 건국으로 인해 철종실록까지만 등재되었습니다.

좀 더 세부적인 말씀도 떠올려보면, 현종은 명성왕후라는 한 명의 아내만 있었는데, 아주 특이한 경우라고 합니다.
현종의 아내가 한 명이기 때문에 아들인 숙종은 큰 왕위 계승 경쟁 없이 즉위할 수 있었고, 이로 인해 안정된 재위 기간을 보냈습니다.
숙종 때 노산군 일기를 단종대왕실록으로 바꾸고자 하여 실록의 표지만 바꾸었습니다.
조선 역사상 북인은 광해군 때만 정권을 잡았었다고 말씀해주셨는데, 이와 관련해 당파 싸움에 관한 말씀도 많이 해주셨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올라왔던 것이었는데, 갑작스럽지만 이렇게 많은 내용을 배워가는 것 같아서 너무 좋았습니다.
많은 내용을 알려주신 김 해설사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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